김태형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융합본부장이 4일 서울 마포구 YTN 뉴스퀘어에서 미디어홀에서 열린 '2026 범부처 의료기기 STEP-UP 이니셔티브 통합포럼'에서 범부처 첨단의료기기 연구개발 사업과 필수의료기기를 소개하고 있다. /허지윤 기자
“한국 의료진과 주요 대학병원 인프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쓰는 의료기기는 대부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뉴스퀘어에서 열린 ‘2026 범부처 의료기기 스텝업(STEP-UP) 이니셔티브 통합포럼’에서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가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현실을 꼬집었다.
국내 의료기관 내 첨단 의료기기의 상당수는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시장과 산업 기반이 충분하지 않아 연구개발(R&D) 성과를 실제 제품으로 잇는 게 어렵다는 .도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취약.으로 꼽힌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면 의료현장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실제 환자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기기의 공급이 중단된 사례도 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당시 체외막산소공급(ECMO) 관련 장비 확보와 공급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2017년 특정 소아 환자군에 필요한 인공혈관이 사실상 단일 업체에 의존하면서 공급 중단이 임상 현장의 문제로 이어졌다.
필수의료기기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국산화 연구개발이 본격화됐다. 범부처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은 필수의료기기 후보 123개를 검토해 25개 우선 지원 품목을 선정하고, 올해 이 가운데 7개 국산화 과제에 착수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심장박동기부터 심폐용 혈액펌프까지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기기의 국산화 전략과 함께 연구개발 초기부터 규제·평가·표준화를 연계해 제품화를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의료기기 STEP-UP 이니셔티브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과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이 추진해 온 ‘범부처 의료기기 제품화 지원 거버넌스’를 확대·개편한 플랫폼이다.
연구개발 과제의 기술성숙도(Technology Readiness Level·TRL)를 바탕으로 개발 단계별 필요한 규제과학과 기술 지원을 연결해 연구성과가 실제 제품화로 이어지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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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고난도 의료기기까지 추격
조양현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중국 의료기기 기업들의 빠른 성장도 짚었다. 중국이 저가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을 넘어 고난도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최근 2~3년 사이 중국 기업들이 국내 의료진을 대상으로 제품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며 직접 중국을 방문해 이식형 인공심장펌프 기술을 살펴본 경험을 소개했다.
과거 이식형 인공심장펌프 시장은 미국과 유럽 기업이 주도했지만 중국에서는 여러 기업이 임상시험을 거쳐 제품을 판매하는 단계까지 올라섰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중국 기업들이 유럽과 미국 의료기기 기업을 인수해 기술력을 확보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중국 기업들은 국내 의료진을 중국으로 초청해 제품과 기술을 소개하는 등 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이다. 조 교수는 중국 의료기기 기업들이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국내 의료기기 산업과의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박동기부터 혈액펌프까지…“공급 끊기면 환자 생명과 직결”
이날 포럼에서는 필수의료기기 국산화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과제도 소개됐다.
연구자들은 ▲이식형 심장박동기 및 고정밀 리드 ▲완전 자기부상 방식 심폐용 혈액펌프 ▲혈액투석용 비중심순환계 인공혈관 ▲심폐수술용 혈관 튜브·카테터 ▲말초혈관 혈전 제거 카테터 등 주요 필수의료기기 국산화 과제의 개발 현황과 연구 전략을 공유했다. 올해 시작된 과제에는 ▲신생아용 인공호흡기 ▲가정용 복막투석기도 포함됐다.
조 교수가 소개한 ‘이식형 심장박동기 및 고정밀 리드’ 과제는 단순히 외산 제품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장기간 인체에 이식되는 기기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심장박동기는 환자의 심장 박동을 지속적으로 감지하고 필요한 경우 전기 자극을 전달해야 한다. 기기를 소형화하면서도 배터리 사용 기간을 늘려야 하고, 심장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리드는 오랜 기간 전기적 성능과 내구성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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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전력 회로와 배터리 수명 예측 기술, 무선통신, 생체조직과의 상호작용 등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의료기기다.
특히 기존 외산 제품은 수십 년간 임상 경험과 제품 개선을 축적해왔다. 후발주자인 국내 기업이 기술력만으로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특허와 임상, 인허가 역시 넘어야 할 장벽이다.
조 교수 연구팀은 7년에 걸쳐 기술을 단계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초기 3년은 제품 설계와 안전성 평가를 진행하고, 이후 시제품 개발과 대동물시험, 규제 대응 등을 거쳐 마지막 단계에서 임상시험 준비와 제품 최적화에 나선다. 리드 역시 장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내구성과 전도성을 확보하고, 이식 과정에서 조직 유착이나 부작용을 줄이는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인성메디칼의 박순용 연구소장은 ‘완전 자기부상 방식 심폐용 혈액펌프 및 인공지능 기반 운용 플랫폼’ 개발 전략을 발표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용되는 심폐기와 순환보조장치 등 주요 5개 품목은 모두 수입 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환자의 생명 유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4등급 의료기기로, 공급이 중단되면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존 혈액펌프는 혈액이 펌프 내부 구조물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혈전이 발생하거나 적혈구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박 소장은 현재 사용되는 일부 제품에서도 장시간 사용하면 혈액 손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한 5개 제품 가운데 4개는 허가받은 지 15년이 넘은 제품이라고도 했다.
인성메디칼은 혈액과 구동부가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는 완전 자기부상 방식을 적용해 기존 제품의 한계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7년간 개발을 통해 해외 선진 제품과 동등 이상의 성능을 확보하고, 향후 이식형 순환기기로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까지 확보한다는 목표다.
◇R&D 끝난 뒤 규제 대응? “처음부터 함께 간다”
의료기기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허가와 성능·안전성 평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표준화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STEP-UP 이니셔티브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초。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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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이 끝난 뒤 규제기관을 찾는 방식에서 벗어나 초기 단계부터 규제·평가·표준화 이슈를 함께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김현정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연구과 연구관은 “세계 최초·최고 수준을 목표로 하는 의료기기는 선례가 없어 안전성과 유효성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지조차 불분명한 경우가 있어 연구개발 초기부터 규제기관과 소통하면서 필요한 평가 방법과 허가 방향을 설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STEP-UP은 ‘베이스(BASE)’와 ‘라이즈(RISE)’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BASE에서는 각 과제의 개발 단계와 기술 수준을 분석해 규제·평가상 필요한 지원을 찾는다. 연구자와 전문가가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밀착 지원하고, 특정 규제·평가 쟁.에는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BASE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RISE로 연결한다. 식약처 허가·심사 부서뿐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 관계기관이 참여해 허가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등 제품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함께 검토한다.
규제기관 내부의 기술 이해도를 높이는 작업도 병행한다. 식약처는 새로운 의료기술과 평가 방법을 공유하는 연구동향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어 심사·연구 인력이 신기술을 미리 파악하고 필요한 평가 기준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법민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장은 “의료기기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제품화와 의료현장 활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초기 단계부터 규제와 평가, 표준화 등을 함께 고려하고, 제품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기술적 과제를 선제적으로 。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업단은 의료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기기의 선제적 개발을 지원하고, 연구자들이 개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연계한 지원체계를 지속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범부처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7년간 추진된다. 올해 106개 신규 과제가 시작됐다. 사업은 세계 최초·최고 수준의 의료기기 개발과 유망·필수의료기기 개발, 임상·규제 지원 및 평가기술 개발 등으로 구성된다.
9월 4일 서울 YTN 뉴스퀘어에서 열린 '2026 범부처 의료기기 STEP-UP 이니셔티브 통합포럼'에서 강석연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과 김법민 사업단장 등 주요 참석자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범부처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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